짧은 글

생명은 바야흐로 죽음으로, 죽음은 바야흐로 생명으로 변한다. 가능은 바야흐로 불가능하므로, 불가능은 바야흐로 가능으로 변한다. 옳음은 그름으로 말미암고, 그름은 옳음에서 말미암는다. 따라서 성인은 옳고 그름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이것 또한 저것이고, 저것 또한 이것이다.

하루만 살다가는 버섯은 한달 중의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여름만 살다가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이들은 짧게 사는 존재들이다. 남쪽에 사는 명령 나무는 500년을 봄으로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는 요즈음 장수한 것으로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아지고자 하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하루살이인 버섯에게는 초하루와 그믐은 '존재하지 않음'이지만 매미에게는 '있음'이다. 팽조의 800년 삶이 인간들에게는 매우 장구한 삶이지만, 명령나무의 관점에서 보면 극히 짧은 '하루살이'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천지 대자연은 나에게 형체를 주고 나서, 삶으로써 나를 고달프게 하였고, 늙음으로써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써 나를 쉬게 하는 것이다. 지금 노련한 대장장이가 녹인 쇠를 부어 도구를 만들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쇳물이 뛰어 나서면서 '나는 명검이 되어야 해'라고 외친다면, 대장장이는 이를 상서롭지 못한 쇠라고 여길 것이다. 지금 어쩌다가 우연히 사람의 형체를 만나서 태어난 것일뿐인데, '꼭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존재의 절대성을 고집한다면 조물자는 나를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겠는가!

대기가 기운을 기를 토해낸 것을 바람이라 한다. 한 번 불면 수많은 곳에서 성난 소리들이 나온다. 높은 산 속에 백여 아름이나 되는 거목의 깊은 구멍들에서, 마치 급한 물소리, 화살 날아가는 소리, 질책하는 소리, 곡하는 소리, 숨 쉬는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센 바람이 그치면 모든 구멍들도 소리를 멈춘다. 기쁨과 분노가 서로 엇갈리게 되고, 우매한 자와 똑똑한 자가 서로 속이니 인간들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하나의 바람이 불어 천천만만의 소리가 나는 것은 구멍들이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여, 모두 스스로 취한 소리다.

나는 내 자신이 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천지로부터 음양의 기운을 받아서 생겨난 것으로 스스로를 생각 해 보니, 내가 우주 안에 있다는 것은 작은 돌이나 작은 나무가 큰 산에 있는 것과 비슷하여, 바야흐로 적은 양으로 보이는데, 또 어떻게 스스로 많은 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주 안에 사해가 있다는 것은 연못 안의 물병만한 빈틈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들을 만 가지 존재라고 부른다면, 사람은 그 중에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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